마태복음24장의 정통신학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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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회 댓글 0건 조회 782회 작성일13-03-01 16:51본문
마태복음 24장의 마지막예언에 대한 정통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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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라고 시기에 관해 물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전혀 대답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까'라고 물었을 때에는. 충분한 대답을 주셨다. 지금 이 예언은 근본적으로 임박한 사건을 묘사하고 있다. 구약의 모든 예언이 직접적으로는 유대 민족의 역사적 사건들을 이야기하고 있었을지라도 그것은 명백히 복음시대의 교회와 메시야 왕국을 내다보고 있으며 신약 성경에서도 그렇게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예언도 예루살렘의 패망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훨씬 더 나아가서 마지막 세상의 심판까지를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1) 그리스도께서는 경고로써 시작하신다(4,5절).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4절). 제자들은 과연 언제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한 대답과 그 비밀을 알기 원했다. 그러나 이 경고의 말씀은 제자들의 호기심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것이 너희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희는 너희 임무에만 신경을 쓰고 또한 나를 따르라. 그리고 유혹에 매혹되어 나를 버리지 말아라." 교회에게는 유혹자가 박해자보다 훨씬 위험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곳에서 세차례에 걸쳐 거짓 선지자의 출현을 말씀하신다.
그것은 첫째, 예루살렘 패망의 징조이다. 참 선지자들을 죽인 자들은 당연히 거짓 선지자들의 올무에 걸리게 되어 있고, 참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은 당연히 거짓 그리스도들과 자칭 메시야라 하는 자들에게 속아 파멸하게 되어 있다. 둘째, 이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하나의 시험이 되어 완전한 자들의 완전함을 밝히 드러내 보이는 좋은 시금석의 방편이 되었다.
이제 여기에서 이 속이는 자들에 대해 살펴 보자.
① 이들의 변장 : 사단이 가장 치명적인 해를 입히는 때는 빛의 천사로 나타나는 때이다. 즉, 최상의 선으로 보이는 것이 최악의 허울이 될 수 있다. 거짓 선지자들은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11-24절). 속이는 자들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가장하고 온갖 거짓말을 자행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속이는 자들이 선생으로 교회 내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큰 오류를 범하게 한 적이 많이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거의 의심을 받지 않기 때문에 그 위험이 한층 더 커질 것이다. 즉 수비대진영 내의 한 명의 변절자가 진 밖의 일천명의 정규 적군보다 더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 또한 거짓 그리스도들이 나타나 그리스도의 고유한 이름을 도용하여(5절), 내가 그리스도라고 말할 것이다(24절).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 가운데서는 메시야가 오시리라는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메시야에 대해 '오실 그이'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전 민족이 그를 배척하고 말았다. 그 결과 유명해지려는 야심을 품은 자들이 그들을 속여서 그리스도라 자칭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은 자신의 대리자와 사자들을 통하여 부지런히 사방에서 백성들을 자신에게로 끌어오게 할 것이다(23절). 세상의 환란과 공포가 점점 더할 때, 사람들은 구원처럼 보이는 것은 무엇이라도 잡으려고 할 것이며, 이때에 사단이 사람들을 속여 큰 이적을 행하고,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있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참 그리스도는 자신을 나타내려고 애쓰지도 않았고, 외치지도 않았고, 사람들이 그에 대하여 여기있다 저기있다 말하지도 않았다(눅 17:21). 오히려 그리스도는 여기나 저기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만유 중에 계시며, 그의 이름이 기록된 모든 곳에서 자기 백성을 만나시며, 축복하신다.
② 속이는 자들이 자신의 허위를 믿게 하려고 보여주는 증거 :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24절).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교훈을 확증하시기 위해 사용하신 하나님의 확인 도장인 참 기적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들이 기적을 행할 것이라 하지 않고, 큰 표적을 보일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지 눈가림에 불과하다.
③ 속이는 자들이 노력한 결과 : 많은 사람들을 미혹케 하리라(5절). 마귀와 그의 사자들이 불쌍한 생명들을 미혹하는 데 큰 성공을 거두어, 좁은 문을 찾는 자는 거의 없고, 많은 사람이 넓은 문으로 빠져들어 갈 것이다. 또한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할 것이다(24절). 이 말씀은 첫째, 미혹의 세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즉, 그 힘은 급한 강물처럼 많은 사람들, 심지어 튼튼히 섰다고 여겨지던 사람들까지 쓸어가 버릴 그건 종류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원한 섭리를 따라 역사하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은혜가 아니면 어떠한 것도 이것으로부터 보호해 줄 수 없을 것이다. 둘째, 이런 위험 가운데서도 택함을 입은 자들의 안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할 수만 있으면'이라는 삽입구에서 당연히 취하여질 수 있다. 즉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을 미혹케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갈렌이 아주 어렵고 실제로 불가능한 일을 묘사할 때 말했던 "그리스도에게서 그리스도인들을 끌어내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라는 말은 속담처럼 사용되는 것이다.
④ 우리 주께서 재차 경고하심 :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이 경계할 수 있도록 경고를 주신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25절). 자신이 어디에서 습격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전해들은 사람은 피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경고는 우리의 경계심을 일깨워 주시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믿음, 즉 그리스도께서 미리 우리에게 일러주신 그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보호받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23절)고 말하는 자들을 믿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참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우편에 계시며, 두 세 사람이 그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영으로 함께 하심을 믿는다. 그리고 참 믿음에 있어서 맹신보다 더 큰 적은 없다. 왜냐하면 단순한 사람은 모든 말을 다 믿고, 어떤 외침이나 따라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혹은 골방에 있다'(26절)고 말하는 자들을 쫓아서는 안되며, 손가락을 높이 들어 새로운 그리스도, 새로운 복음을 우리에게 가리켜 보여 주는 어떤 자들을 따라가서도 안된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헛된 호기심을 좇아가다가 돌이킬 수 없는 배교에 빠져버렸다.
(2) 그리스도께서 국가 간의 많은 전쟁과 큰 혼란을 예언하신다(6,7절).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당시 로마제국에는 큰 평화가 있었고, 야누스 신전은 폐쇠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평화를 주러, 혹은 지속시키시러 오셨다고 생각하지 말라(눅 12:51). 결코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의 도시와 성벽은 분란의 시대일지라도 세워질 수 있고, 전쟁이 오히려 그리스도의 사역을 촉진시킬 수도 있다.
1) 그날의 일에 대한 예언 : 너희가 곧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것이다. 전쟁이 나면, 전쟁에 대한 소문이 난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시골에서 조용하게 사는 농부도 전쟁 소문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복음을 거절한 결과가 무엇인지 보라! 평화의 사자에게 귀기울이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전쟁의 전령을 들을 것이다.
2) 그날의 임무 :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6절). 이런 나쁜 소식을 들으면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마음을 정해 하나님께 의뢰하는 사람은 그의 마음이 평안해지며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소란한 시대라고 해서 그리스도의 백성의 마음이 혼란하게 된다면, 이는 그리스도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다.
# 우리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① 우리는 이런 일을 예상하라는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반드시 처벌받을 것이며,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와 구세주의 영광이 드러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일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런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정해 놓으신 일을 실행에 옮기시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잠자코 기다리자. 새 건물을 세우기 전에, 비록 시끄러운 소리와 먼지 그리고 위험이 따르지 않고는 할 수 없을지라도 낡은 집을 헐어버려야 한다. 즉 흔들리는 것은(유대인들은 심하게 흔들렸다)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속케 하기 위하여 반드시 없애버려야 한다(히 12:27).
② 또한 우리는 더 심한 곤경도 예상해야 되기 때문이다. 끝은 아직 아니니라. 즉 시간의 끝은 아직 이르지 않은 것이다. 시간이 연속되는 동안 우리는 계속해서 난리를 예상해야 한다. "이 난리들의 끝은 아직 아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말아라. 현재의 짐더미에 짖눌려 버리지 말아라. 오히려 현재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힘과 정신을 한데 모아 네 앞에 놓인 것들을 대적하라. "만약 우리가 보병과 함께 달려도 피곤하게 된다면, 기마병과 어떻게 겨룰 것인가, 또한 우리 앞의 작은 시내를 두려워한다면 넘실대는 요단강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렘 2:5).
(3)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부터 곧 내려올 추가 심판, 즉 기근과 온역과 지진을 예언하신다.
이 세 가지는 다윗에게 이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셨던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그때 다윗은 어느 것이 가장 심한 심판인지 몰랐기 때문에 선택하기에 몹시 곤란을 겪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쟁 뿐만 아니라(이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세 가지 모두 추가될 것이다. 즉 세 번째 인을 떼실 때 검은 말로 묘사되는 기근이 있을 것이다. 사실 예루살렘이 포위 당했을 때 극심한 기근이 성 중에 있었다. 그리고 네 번째 인을 떼실 때 등에 사망을 태우고 음부를 동반한 청황색 말로 묘사되는(계 6:7,8) 온역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처처에 지진이 있을 것이다. 역사상 때때로 지진으로 말미암아 큰 파괴가 발생하곤 하였다. 이 지진들은 많은 사람에게 죽음과 더 많은 사람에게 공포를 몰고 왔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무시무시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지진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단지 재난의 시작일 뿐이다.
(4)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과 사역자들이 당할 핍박과 이에 더불어 일어날 신앙상의 전반적인 배교와 부패를 예언하신다(9,10,12절).
1) 예언하신 십자가(환란)의 내용(9절) : 우리가 미래를 생각할 때,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고난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어려운 일을 겪을 것인가 말씀하셨다. 그러나 제자들이 여태껏 이러한 고난을 겪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재차 강조하신다.
① 너희가 결박과 투옥의 고통을 겪을 것이다.
② 너희가 죽음을 당할 것이다.
③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으로부터 미움을 받을 것이다. 내가 전에 말했던 것처럼(22장). 그 당시 온 세상이 그리스도인에 대한 적개심과 해치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우리는 가장 선한 사람이 가장 나쁜 대우를 받을 때, 이 세상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 그러나 그들이 이토록 미움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었다. 바로 이 사실이 순교자로 만들고, 또한 그를 위로하는 것이다.
2) 십자가(환난)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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